자전거를 오래 타 왔고, 현재도 매우 즐겁게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스포츠 경기도 거의 자전거 관련 스포츠(도로 사이클)만 봐왔었죠.
다만 “봐왔다”라고 굳이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요즘은 경기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도 아닙니다.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의 시대가 끝난 이후로는 거의 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알베르토 콘타도르 때까지는 그래도 띄엄띄엄 보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아예 보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요즘 선수들은 기억에 남는 이름도 거의 없습니다.
암스트롱을 영웅시하고 옹호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약물로 몰락했다고 해서, 그런 이유만으로 마냥 나쁘게만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그 시대의 프로 펠로톤은 다 그랬으니까요.
제가 랜스 암스트롱을 분기점으로 여기게 된 계기는, 그가 고환암을 이겨내고 투르 드 프랑스(TDF) 7번 종합 우승을 했다는 상징성 때문이 아닌, 그와는 전혀 다른 이유였습니다
1. 해골 두건, 비앙키, 그리고 불멸의 클라이머 마르코 판타니
내 라이딩 스타일이 업힐을 주로 타는 성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속 영원한 최애 선수는 언제나 마르코 판타니(Marco Pantani)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힐클라임의 괴물.
머리에 둘러맨 반다나(두건)와 해골 자수를 새긴 안장, 그리고 특유의 체레스테 컬러 민트빛 '비앙키(Bianchi)'. 자전거 동호인들에게 비앙키는 곧 마르코 판타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랜스 암스트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사이클 경기는 현재의 대회들처럼 철저하게 체계화되지도 않았고, 팀 전술이랄 것도 그리 정교하지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렇기에 선수 개개인의 압도적인 역량과 뚜렷한 개성이 경기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때 당시의 선수들은 클라이머, 다운클라이머, 스프린터 등 각자의 포지션이 명확했습니다. 이들이 산악 구간이나 평지 구간별로 어떤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었죠.
2. 2000년 몽방투(Mont Ventoux): 낭만의 괴물과 과학적 머신의 대결
특히 힐클라이머가 만들어 내는 반전의 드라마는 그 어떤 포지션보다 강렬한 전율과 환호를 만들어 냈습니다. 결승선 바로 앞에서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스프린터 대결과는 결이 다릅니다.
힐클라임은 숨막히는 고속 케이던스, 괴물 같은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토크를 실어 눌러 치는 '댄싱 페달링'이 서로 눈치 게임을 하듯 교차하는 지옥입니다. 길고 긴 접전 끝에 가장 높은 정상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되는, 반전와 반전의 드라마가 가장 많이 나오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2000년 몽방투(Mont Ventoux) 구간에서 벌어진 약 20여 분간의 암스트롱과 판타니의 세기의 대결은, 지금 다시 봐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명경기 중의 명경기입니다.
"당시의 경기는 오직 승부욕과 순간의 판단, 그리고 뜨거운 감정만으로 풀어나가는 날것 자체의 레이스였습니다."
▲ 2000TDF 몽방투(Mont Ventoux)에서 펼쳐진 랜스 암스트롱VS마르코 판타니의 숨막히는 혈전
현재의 철저하게 짜인 통제 하에서 고강도 파워미터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된 소위 '올라운더'들이 경기를 원사이드하게 이끌고 가는 노잼 레이스와는 차원이 달랐죠.
이 역사적인 대결이후 다음해 2001년 TDF 알프듀에즈 구간에선 랜스 암스트롱이 여유있는 차이로 승리했고, 당시 언론은 “영웅이 괴물을 쓰러뜨렸다”며 대서특필하기에 이릅니다. 이 경기를 끝으로 판타니는 내리막길을 걷다 결국 40세가 되기도 전에 약물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쓸쓸하게 사망합니다. 그리고 암스트롱은 이 경기를 기점으로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몇 년 후 금지약물 복용이 천하에 까발려지며 허무하게 몰락하게 되죠.
3. 사라진 개성과 낭만, 올라운더 머신들이 지배하는 펠로톤
암스트롱이 이긴 결과가 상징하는 바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이고, 낭만적이었던 옛 시대의 힐클라이머를 냉정하고, 과학적이고, 철저하게 통제된 머신 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선수가 밟고 올라선 것입니다. 이는 자전거 경기의 생태계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일종의 기점과도 같았습니다.
아마 이때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도로 사이클 경기에서 각각의 포지션이 명확했던 선수들의 개성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요. 점차 모든 스타일을 다 우겨넣은 육각형 능력치의 '올라운더'라는 머신들끼리의 대결이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그 이후 종종 피터 사간이나 마크 카벤디시 같은 강렬한 스프린터들이 등장해 스타성을 뽐내긴 했지만, 마르코 판타니 같은 불멸의 힐클라이머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콘타도르 시절까지 간간히 대회를 챙겨봤던 이유도,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이로 퀸타나 같은 순수 클라이머들의 투지가 조금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개성과 낭만이 사라지고, 철저한 데이터 통제와 계획 하에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고도의 빌드업 스포츠. 요즘의 TDF 경기들은 점점 저와는 맞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여지게 되었고, 어느샌가 저는 자전거 대회를 전혀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 결론: 1997년 알루미늄 자전거가 남긴 불멸의 유산
참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최첨단 에어로 카본 프레임과 전자식 전동 구동계, 세라믹 베어링 기술이 집약된 자전거들이 경쟁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마르코 판타니가 무려 무겁고 단단한 '알루미늄 차'를 타고 1997년 투르 드 프랑스 알프듀에즈 구간에서 세운 37분 35초의 업힐 기록입니다.
풍동 실험실과 파워미터 데이터가 인간의 한계를 계산해 내는 현대 사이클링 기술 속에서도, 오직 심장 심박수와 핏빛 투지 하나로 가파른 경사도를 찢어발겼던 한 클라이머의 낭만은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채 그 꼭대기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여전히 요즘 자전거 대회 대신 옛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가슴 설레어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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