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자전거 선택과 가방 세팅 가이드에 이어, 이번에는 국토종주를 처음 도전을 하시는 분들이 아마 가장 많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부분을 짚어볼까 합니다. 바로 “짐(Packing)”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전거 장거리 여행에서 가장 좋은 명제는 무조건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국토종주가 처음인 초보자분들은 이 “최소한”이라는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를 전혀 모른다는 점입니다. 간혹 자전거 져지 뒷주머니에 신용카드 딱 한 장만 넣고 달리는 초고수 용자들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길 위의 수많은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베테랑들의 영역입니다. 경험도 없이 무작정 그렇게 가다간 초반부터 엄청난 난관에 봉착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서울-부산간 국토종주 코스(633km)를 기준으로 설명드리면, 경험이 없는 입문자분들은 보통 3박 4일에서 4박 5일 정도로 코스 일정을 잡는 게 대부분일 겁니다. 물론 2박 3일 만에 끊는 분들도 계시지만, 국토종주라는 게 인생에서 그리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4박 5일 정도 여유롭게 일정을 잡고 천천히 대한민국 국토의 아름다움을 즐기시길 권장하는 편입니다.
1. 여행 옷차림의 환상은 버려라: 의류 미니멀라이징의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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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때 준비물 목록-물론 이렇게 가진 않았음) |
그렇다면 국토종주를 준비할 때 가방 부피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범인은 무엇일까요? 단언컨대 '의류'가 대부분일 겁니다. 처음이시니까 국토종주를 막연하게 낭만적인 국내 여행이라 생각하셔서 그렇습니다. '낮에는 한적한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저녁에는 산뜻한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기분 좋은 맛집이나 핫플 술집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하는 로망...'
죄송하지만, 그런 기분을 낼 수 있는 장소는 종착지인 서울이나 부산밖에 없습니다. 서울 출발 기준으로 중간 숙박지로 들르게 되는 장소들은 대개 양평, 수안보, 구미시, 남지읍 정도로 정해져 있는데, 이 동네들이 전부 옷 예쁘게 갖춰 입고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가 아닙니다. 특히 남자분들 중에서 이런 타지 숙박지에서의 우연한 만남(?) 같은 걸 기대하시기도 하는데, 그냥 꿈 깨시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그럴 만한 장소도 없을뿐더러, 하루 종일 페달을 굴리고 숙소에 도착해 밥 한 숟갈 뜰 때쯤이면 이미 온몸이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지기 바쁠 테니까요.
💡 저의 기준으로 국토종주시 의류 압축 팁 (여름 기준)
라이딩할 때 입을 자전거 의류 한 벌 + 숙소용 가벼운 반바지/반팔 한 벌 + 쪼리(슬리퍼) 1개 끝.
라이딩할 때 입을 옷은 어지간하면 일상복 대신 자전거 전용 져지와 상하의(패드 바지)를 구입해서 입으시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국토종주 내내 거칠게 입고 험하게 세탁해야 하므로 비싼 브랜드 제품을 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요즘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4~5만 원 정도만 투자해도 가성비 좋은 상하의 빕숏 세트를 맞출 수 있습니다. 자전거 전용 복장은 일반 의류와 비교했을 때 쾌적함의 차이는 이루말할수 없으며, 특히 엉덩이 패드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천당과 지옥' 차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또한, 국토종주 코스 근방의 모텔들은 자전거 라이더들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세탁기를 무료로 쓰게 해주거나, 최소한 강력 탈수기 정도는 흔쾌히 허락해 주는 곳이 많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면서 입었던 져지를 바디워시로 대충 슥슥 빨아 탈수기에 돌린 뒤, 객실 에어컨 밑에 널어두면 다음 날 아침 새 옷처럼 뽀송하게 말라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자전거 빕숏(패드바지)을 입을 때는 속옷을 입지 않습니다. 즉, 속옷은 숙소에 도착해서 밥 먹으러 갈 때와 잘 때 말고는 입을 일이 없다는 뜻이죠. 덕분에 속옷과 양말도 부피를 최소화해서 챙길 수 있고, 샤워 후 쪼리를 신으면 양말을 추가로 신을 일도 없습니다. (클릿슈즈가 아닌 일반 운동화 유저라면 쪼리조차 안 챙겨도 되지만, 땀에 찌든 주행용 운동화를 씻고 나서 다시 신는 찝찝함을 피하려면 가벼운 슬리퍼 하나쯤은 챙기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저는 숙소에서 입을 옷조차 무거워서 안 챙겨갔던 적도 있습니다. 숙소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다 산 뒤,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다 빨아 에어컨에 걸어두고 완벽하게 벌거벗은 상태로(?)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 짐을 줄이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2. 가방 무게를 덜어주는 '과감한 생략'과 공구 세팅
의류를 압축했다면 그다지 무겁지 않은 필수 안전 용품과 소형 장비들만 남게 됩니다.
- 자전거 비상 공구: 펑크 패치 세트, 휴대용 육각렌치, 여분의 튜브 1개, 손바닥만 한 휴대용 소형 전동 펌프 (요즘은 가볍고 압력 세팅이 잘 되는 전동 펌프 한 대 들고 가면 장거리에서 심리적 안정이 됩니다.)
- 전자기기: 긴급할 때 쓸 소용량 보조 배터리, 최소한의 충전 케이블 (종주길 도심지 모텔들은 웬만하면 객실 내에 타입별 케이블이 다 구비되어 있어서 긴 케이블을 주렁주렁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 자외선 차단: 팔토시와 버프(Buff)는 필수 중의 필수입니다. 차라리 온몸을 가리는 게 나으므로 무거운 선크림 통은 과감히 안 챙겨가셔도 무방합니다.
- 과감히 뺄 것: 세면도구나 수건은 모텔에 넉넉히 구비되어 있으니 짐에서 빼세요. 상비약도 굳이 무겁게 들고 가기보단 요즘은 자전거 길 근처 편의점에 다 깔려 있으니 필요할 때 사면 됩니다. 본인이 꼭 써야 하는 개인 로션 정도만 소분해서 챙기세요.
참고로 많은 분들이 '우비(우천용 펑초)'를 챙기시는데, 제 경험상 우비는 장거리 라이딩에서 크게 의미가 없는 거추장스러운 물품입니다. 부슬비 정도에는 체온 유지용으로 쓸만할지 몰라도, 한여름 쏟아지는 게릴라성 소나기 앞에서는 어차피 다 젖기 때문에 무용지물입니다. 오히려 바람에 펄럭이며 라이딩을 방해하고, 자칫 뒷바퀴에 말려 들어가면 대형 낙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절대 권장하지 않습니다.
3.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숨겨진 진짜 필수품: '바세린'과 '지방 현금'
수많은 짐을 다 쳐내고도 가방에 '무조건' 집어넣어야 하는 숨은 주역 두 가지가 있습니다.
🥇 첫 번째 필수품: 피부 마찰을 줄여주는 오리지널 '바세린(Vaseline)'
이건 첫날부터 바르지 마시고, 지옥의 통증이 시작되는 '둘째 날 아침' 출발 전에 반드시 바르셔야 합니다. 안장에 닿는 엉덩이 항문 주변과, 손으로 엉덩이를 눌렀을 때 뾰족하게 만져지는 뼈 부위인 '좌골' 주위에 피부에 직접 듬뿍 바르세요. 패드 바지를 입었더라도 둘째 날부터는 살이 쓸리기 시작하는데, 바세린을 발라두면 물리적인 마찰력을 극적으로 줄여주어 장거리 라이딩 시 생기는 엉덩이 진물, 물집, 통증을 엄청나게 예방해 줍니다. 무조건 챙기세요.
💵 두 번째 필수품: 비상용 '오프라인 실물 현금' 만 원짜리 몇 장
요즘 세상에 무슨 현금이냐며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페이만 믿고 가다간 정말 큰코다칩니다. 지금도 외진 지방 시골길이나 농로 근처 구멍가게들은 오직 현금 결제만 가능한 곳들이 꽤 많습니다. 온몸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봉크(체력 방전)'가 오고 목이 말라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저 멀리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이는 시골 구멍가게에서 현금이 없어 보급을 못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그 악명 높은 낙동강 사막 구간(낙동사막)에서 현금이 없어 지옥을 맛보았습니다. 비상용 현금 삼사 만 원은 지갑 깊숙한 곳에 꼭 품고 달리세요.
✍️ 결론: 짐을 줄이면 가방 레이아웃이 아름다워진다
이렇게 과감하게 생략하고 압축하면 전체 짐 부피가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해 드린 피팅감 좋은 가벼운 배낭 한 개, 혹은 자전거에 장착하는 대용량 새들백 딱 한 개와 탑튜브/핸들바 백 조합 정도면 4박 5일 일정을 차고 넘치게 소화할 수 있습니다. 요즘 새들백은 워낙 확장성이 좋아서 그거 하나만 뒤에 달고 가도 충분히 미니멀 주행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담 하나 하자면, "이렇게 짐을 최소화하면 마지막 날 부산 낙동강 하굿둑이나 서울 아라뱃길 인증센터에 도착해서 완주 축하 회포를 풀 때 너무 초라한 몰골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차피 완주 도장을 다 찍을 때쯤이면 얼굴은 시커멓게 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서 어떤 옷을 입어도 태가 안 납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서울 아라뱃길 근처나 부산 낙동강 하굿둑 인증센터 바로 앞에는 축하 잔치를 벌일 만한 화려한 상권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텔 주변 식당에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는 게 전부일 테니, 진짜 멋진 완주 축하 파티는 안전하게 집으로 복귀하셔서 친한 친구들과 함께 나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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