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자전거 국토종주의 본격적인 시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국토종주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국내의 각종 지천들과 해안선, 그리고 제주도까지 총망라하는 총길이 약 1,800~2,000km 정도가 되는 국내외 거의 유일무이한 최고의 자전거 인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 국토종주 코스를 매우 즐겁게 라이딩해 왔고, 현재는 제주도 종주까지 다 끝마치고 그랜드슬램(Grand Slam)을 달성한 상태입니다.
국토종주를 이미 즐기고 계신 분들이나 경험이 많으신 분들에겐 고민거리가 아니겠지만, 대개 처음 이 코스를 알게 되고 도전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제일 처음 고르는 코스는 아마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총길이 633km의 거리를 자랑하는 “국토종주 메인 코스”일 겁니다. 이 코스는 여러 구간들 중 백미중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몇 박 며칠을 오직 자전거로만 달리는 경험을 얼마나 할 수가 있을까요?"
국토종주 모든 코스를 다 돌지 않아도, 서울-부산간의 이 633km 코스만 돌아도 사실 국토종주의 모든 맛과 재미를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정말로 잘 만들어지고 잘 짜여진 코스입니다.
이러한 국토종주를 재미로 도전을 하든, 아니면 어떤 큰 결심을 하고 도전을 하든 처음이면 많은 고민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짐은 어떻게 패킹할지부터 시작해 '내가 저걸 완주할 수 있을 체력과 정신력이 될까'까지... 그런데 여러 고민들을 하면서 의외로 처음 도전하시는 분들이 잘 고민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질문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할까?"
자전거로 도전하는 코스인데 메인인 자전거를 고민하지 않는다고? 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지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깊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자전거로 도전하는 코스니까 그냥 집에 있는 자전거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슨 자전거를 타고 가든 완주는 다 가능합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부산까지 완주하시는 대단한 분들도 계시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가능하냐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 더 편하고 안전한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자전거별 장단점'입니다. 이것저것 다 자르고 제가 국토종주용으로 가장 추천해 드리고 싶은 자전거 종류는 바로 “그래블 바이크(Gravel Bike)”입니다.
1. 국토종주 코스의 잔인한 노면 상태: 우리가 그래블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 '그래블'이란 자전거 장르가 아직 대중적으로는 조금 생소하실 수도 있습니다. 한국 라이더들의 관심사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린 지 몇 년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냥 쉽게 풀어 설명하면 로드바이크 형태(드롭바)에 MTB(산악자전거)의 튼튼한 휠과 두꺼운 타이어를 달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드와 MTB의 사이 그 어디쯤 가교 역할을 하는 자전거죠.
가격 또한本格적인 상급 로드나 MTB보단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합니다. 물론 욕심을 부리면 가격대는 한도 끝도 없겠지만요. 적어도 국토종주용으로 사용할 요량이면 비싼 자전거보다는 적당한 가격대에 기계식 구동계를 장착한, 정비와 관리가 용이한 모델이 제일 비용 대비 효과(가성비)가 좋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로드든 MTB든 철티비든 무슨 자전거를 타든 국토종주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국토종주 코스 자체의 성격'과 노면입니다.
"국토종주 코스의 노면 상태가 우리가 평소에 보던 잘 닦인 자전거 도로나 매끄러운 공도를 생각하시면 크게 오산입니다."
한강 자전거 도로 같은 곳들은 기본적으로 노면 상태가 아주 고릅니다. 관리가 지속적으로 되고 매일같이 수많은 시민이 이용하기 때문이죠. 반면에 국토종주 코스는 순전히 자전거만을 위해 새로 깔아놓은 비단길이 아닙니다. 기존의 자전거 도로와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한적한 공도, 그리고 농기계가 다니는 시골 농로와 인적이 뜸한 외진 도로를 여기저기 기워 붙인 코스라 노면 상태가 정말로 좋지 않은 구간이 많습니다.
못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타던 그런 깔끔한 길이 아닙니다. 심지어 거친 산길이나 중간중간 비포장 흙길, 자갈길도 많이 있으며, 재수가 없으면 그런 험로를 소나기를 줄기차게 맞으며 진흙탕 속에서 달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2. 로드와 MTB의 치명적인 단점을 상쇄하는 그래블의 매력
원래 정코스를 완전히 벗어나서 공도(자동차 도로) 위주로만 얌전하게 우회해서 다니실 생각이시라면 로드바이크로 가는 게 속도 면에서 제일 무난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차도로만 쌩쌩 다닐 거면 국토종주 코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여행한다는 의미가 퇴색되겠죠. 반대로 MTB를 타고 가면 험로에서는 가장 무난하고 편안하겠지만, 속도를 시원하게 낼 수 있는 평지 구간에서 속도가 안 나 답답할 수 있습니다. 또한, MTB 특유의 부피감과 무거운 무게감이 의외로 장거리 여행의 다양한 상황에서 피로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두 가지 자전거의 장점만을 골라 결합시킨 게 바로 그래블 바이크입니다.
- 속도와 안정성의 밸런스: 평지 속도를 낼 수 있는 구간에선 로드 못지않은 시원한 주행이 가능하고, 험한 길이나 웅덩이에서도 MTB급의 튼튼한 휠과 넓은 타이어 덕분에 미끄러질까 불안해하지 않고 돌파할 수 있습니다.
- 뛰어난 확장성(수납력): 프레임 곳곳에 아일렛(나사 구멍)이 많아 국토종주용 대용량 새들백, 프레임백 등 많은 수납가방을 장착해도 자전거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 정비의 용이성: 전동식 구동계가 아닌 단순한 기계식 구동계를 선택하시면, 장거리 코스 도중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잔고장이나 현장 정비 등에서 엄청난 이점을 가집니다.
혹자는 어중간한 걸 타느니 차라리 확실하게 로드로 가든 MTB로 가든 하나를 선택하는 게 좋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국토종주길은 노면이 극단적으로 나쁘기만 한 게 아닙니다. 적당하게 좋기도 하다가, 적당하게 안 좋기도 한 변화무쌍한 길이라 그 '어중간함'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3. 국토종주 끝, 집으로 복귀할 때 대중교통 수납의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국토종주를 시작을 하든 끝마침을 하든, 부산에서 서울까지 왔던 길을 반대로 다시 자전거를 타고 되돌아갈 괴물 같은 용자가 아니라면, 출발이나 복귀 시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대중교통(고속버스나 기차)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도 그래블은 상대적으로 일자바를 쓰는 MTB보다는 핸들바 부피가 작아 고속버스 짐칸에 수납하기가 특히나 용이합니다. 또한, 휠셋 탈거가 매우 쉬운 구조라 보관이나 이동에도 유리합니다.
물론 요즘 MTB들은 대부분 QR 레버나 쓰루 액슬 방식으로 손쉽게 바퀴를 빼고 넣고 할 수가 있겠지만, 의외로 생활형 MTB나 유사 MTB 중에는 별도의 육각 공구가 없으면 앞바퀴가 빠지지 않는 자전거도 꽤 많습니다. 흔히 철티비라고 하는 저렴한 버전들의 자전거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만약 바퀴가 분리되지 않아 부피가 너무 큰 자전거는, 재수가 없으면 주말이나 만차 시 고속버스 기사님이 수납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 결론: 그랜드슬래머가 매겨본 국토종주 자전거 편한 순위
끝으로 국토종주에 가장 유리하고 편한 자전거 순위를 재미삼아 매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순전히 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그래블 바이크 > 🥈 MTB > 🥉 로드바이크 > 🏅 그 외 하이브리드/미니벨로
"너는 무슨 자전거로 다녀왔는데?"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부끄럽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로드바이크'로만 모든 코스를 다 돌았습니다. 다만 저는 이미 장거리 라이딩 경험과 팩킹 노하우가 많은 상태에서 도전했었고, 적절하게 국토종주 정코스와 차도(공도)를 조합해가며 우회 주행했기에 큰 불편함 없이 최소한의 짐으로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저에게 "그 모든 코스를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자전거를 탈래?"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로드차로는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차도로 빠르게 지나치는 레이싱이 아닌, 온전하게 100% 정코스로만 다니면서 자전거 도로 구석구석에 숨겨진 국토종주의 진짜 백미들과 아름다운 낙동강, 한강의 풍경들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처음 도전하시는 분들이라면 저의 이 정석적인 후회를 참고하셔서 부디 후회 없는 최고의 자전거를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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